20대의 청춘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단연코 '열정(Passion)'이다. 주체할 수 없이 샘솟는 열정을 발산하며, 스스로 계획하고 꿈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쉽사리 형용할 수 없는 경외감마저 든다. 비록 요즘 열정 페이 혹은 천 번은 흔들려야 한다는 말로 이들의 열정을 빚이나 담보 따위로 여기고 좌절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열정이란 단어를 품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꿈꾸는 삶과 목표를 향한 길에서 열정은 우리를 계속 달리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. 하지만 이런 생각과 달리 입대 이후 나에게선 열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.
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. 입대 전 20대 초반 대부분의 시간을 학점관리 및 공인영어시험준비 등 PEET 준비를 위해 할애하고 꽤나 오랜 시간을 학권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열심히 공부했다.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요, 고로 빠른 목표 설정으로 한 걸음 더 먼저 나아가고 싶었던 패기와 열정은 꿈의 포기와 동시에 휘발되어 버렸고, 이후 하루하루를 무료하고 의미 없게 보내던 찰나 이 책을 읽게 되었다.
저자 강수진은 예상과 달리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을 타고났다. 그녀는 우연한 시작으로 발레에 입문하고 국제발레콩쿠르에 우승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. 이후 국제 5대 발레단 중 하나에 입단하며 각 종 무용 관련 상을 얻어내고 엄청난 업적을 쌓았지만 이는 무용에 대한 천부적인 천재성보다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왔기에 가능했다고 책이 말해준다. 읽는 내내 발레의 우아함, 아름다움과는 달리 고된 연습으로 관절과 근육이 튀어나온 충격적인 그녀의 발 모습이 떠올랐다. 하루하루 전쟁같이 치열하게 보내며 살기 위해 연습했다는 그녀는 어제를 뛰어넘는 오늘의 삶을 위해 100% 혹은 그에 넘치는 하루를 반복하며 오늘의 자신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밝힌다.
본인이 걸어온 날들 그리고 결과에 대해 당당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'열정'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. 항상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 후 커트라인에 들지 못하는 점수를 확인할 때면 슬프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무덤덤했음을 기억한다. 조금씩 오늘의 나와 타협하며 내일로 미루던 부족한 내 모습에 결과를 수긍했던 그 때, 모자랐던 건 실력과 운이 아닌 열정이었음을 난 몰랐던 것이다. 그녀를 만나고 난 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.
앞서 말했듯이 오늘날의 우리는 현실이라는 정글 속에서 열정을 빚지고 담보 잡혀가며 살아간다. 열정과 노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세상에 좌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. 하지만,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내 몫은 충분히 해내지 못한 채 주변 탓만 하는 우리의 모습도 마주할 수 있다. 식어버린 눈동자에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, 내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하는 건 진심 어린 순수한 열정이라고 스스로 답을 내리게 되는 지금이다.
'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.' 이 말을 곱씹을수록 느끼는 건 어쩌면 내가 바랐던 건 그저 꿈에 다다른 밝은 내일 뿐이었는지 모르겠다. 그러나, 이제는 두 발 딛고 서있는 오늘을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에 집중해야 함을 깨닫는다. 그리고, 마침내 스스로 되묻게 된다. 오늘도 100%의 열정으로 가득 찬 하루였냐고 말이다.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고 주어진 현재를 살아가도록 해야겠다. 덧붙여 내가 그녀에게서 배운 열정으로 가득 채운 하루가 다른 이들로 하여금 가슴속 꺼진 불씨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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